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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4 윤희에게 시나리오

 

 

 

윤희에게 시나리오

임대형

 

평점 ★★★★★

취향도 ♡♡♡

 

 

 

줄거리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

김희애 주연의 영화 〈윤희에게〉 각본집 출간!

편집 전 무삭제 시나리오와,

감독 임대형과 배우 나카무라 유코가

인터뷰로 전하는 영화의 안과 밖 이야기들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니? 뭐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질 때가"

영화 〈윤희에게〉는 한국에 전례가 없는 중년 여성 퀴어 영화로, 우연히 한 통의 편지를 받은 윤희(김희애)가 잊고 지냈던 첫사랑의 기억을 찾아 설원이 펼쳐진 여행지로 떠나는 이야기이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폐막을 장식하며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와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 주연 배우들의 열연으로 호평을 얻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오직 딸 새봄(김소혜)에 대한 책임감 하나로 삶을 버텨온 윤희가 점차 용기를 내고 상처를 치유하고, 더 나아가 딸에게 용기를 물려줄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는 여정에 함께한다. 소란스럽지 않고 단정하며 구석구석 사려 깊은 이 이야기가 세상의 많은 윤희를 응원하는, '윤희'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윤희에게 시나리오》에는 편집 과정에서 잘려나간 장면까지 모두 담긴 무삭제 시나리오와 영화 속 윤희와 쥰이 주고받은 편지가 시나리오 뒤에 별도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영화와 비교하며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문학적으로 쓰인 시나리오에 오롯이 집중해 읽을 수 있다. 영화 저널리스트 이은선이 진행한 임대형 감독 인터뷰에서는 각본을 쓰고 연출하는 과정에서의 감독의 고뇌와 영화 속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또한 '편지'가 중요한 모티프인 영화와 어울리게 서면으로 진행된 나카무라 유코 배우 인터뷰에서는 이 영화와 인물에 대한 배우의 남다른 애정을 느껴볼 수 있다. 미공개 스틸과 스토리보드, 영화 제작 노트와 배우 인터뷰가 담긴 《윤희에게 메이킹북》은 오는 2월에 출간된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봤던 영화 장면이 떠올랐다. 반년 전에 본 것 같은데 그래도 다 기억이 나더라. 워낙 감명 깊게 본 영화라 그런가….

 

다 읽고 나서 메이킹북도 사둘걸 하고 후회가 됐다. 하지만 시나리오가 초판본이라 내겐 편지가 있지롱^ㅁ^

 

 

 


 

 

 

시나리오

 

새봄   나도 너처럼 생각 없이 막 살아보고 싶다.
경수   나 나름대로 생각 많이 하면서 살아…

p.14

 

새봄이와 경수 너무 귀엽다.

 

 

 

정류장의 중년 여성들에 비하면 조금 어려 보이는 윤희.

p.16

 

 

 

#19. 한국 / 윤희와 새봄의 동네 / 전봇대 가로등 / 밤

밤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 한적한 동네 어귀. 가로등 아래 쪼그려 앉아 있는 윤희,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끈다. 담배 냄새를 없애기 위해 일어나 옷을 털고, 가방에서 섬유향수를 꺼내 옷에 뿌린다. 하지만 힘든지 곧 다시 쪼그려 앉아버리는 윤희.

p.34

 

 

 

쥰 목소리   윤희야. 너는 나한테 동경의 대상이었어. 너는 내가 무지를 깨우칠 수 있도록 안내해준 존재였고, 탐험하고 싶은 미지의 영역이었어. 너를 만나고 나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어.

p.82

 

비단 한 가지 의미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문장.

 

 

 

   그럼 혹시 무슨 우편물 못 봤어? 책상 위에 뒀던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도 없네.
마사코   (고개를 기웃하며) 우편물? 그런 거 못 봤는데?
   (마사코를 의심스럽다는 듯 본다)
마사코   (쥰의 시선을 피하며) 피곤하네. 집에 갈까?
   응.

p. 94

 

 

 

더보기
가방에서 장갑을 꺼내 끼는 쥰. 그때, 주위를 둘러보며 허겁지겁 쥰이 서 있는 방향으로 걸어오는 윤희. 쥰, 윤희를 힐끔 봤다가 놀라서 온몸이 굳어버린다. 윤희 역시 쥰을 힐끔 보며 그냥 지나치지만, 얼마 후 놀라며 걸음을 멈춘다. 얼마간 그대로 가만히 서 있는 두 사람.

   윤희니?

쥰의 말에 놀라는 윤희, 잠시 그렇게 가만히 서 있다가, 무슨 각오라도 한 듯 뒤돌아서 쥰을 본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윤희를 보는 쥰. 쥰을 보며 어색하게 미소 짓는 윤희. 쥰과 윤희는 한참 그렇게 가만히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p.150

 

 

 

윤희 목소리   쥰아. 나는 나한테 주어진 여분의 삶이, 벌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동안 스스로에게 벌을 주면서 살았던 것 같아.
윤희 목소리   너는 네가 부끄럽지 않다고 했지? 나도 더 이상 내가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우리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p.168

 

그래, 우리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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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윤희. 블랙아웃.

윤희 목소리   추신. 나도 네 꿈을 꿔.

윤희의 말이 끝나자마자 음악 오른다.

p.171

 

 

 


 

 

 

인터뷰/감독 임대형

 

눈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 철길처럼, 윤희의 지난 시간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았다. 영화는 “여분의 삶이 벌이라고 생각”했던 윤희가 스스로 지난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똑바로 마주하게 만든다. 윤희의 시간이 멈추었던 즈음의 나이를 통과하고 있는 딸 새봄을 통해, 윤희의 삶에 다시 봄이 찾아오도록 부드럽게 추동한다.

「글 이은선」 p.182

 

 

 

이은선   불단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 장면에서 마사코가 ‘천국에 잘 도착했니?’라는 짧은 대사를 할 때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함축적이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대사다.

임대형   (중략) 실제로 영화에는 그 대사 뒤에 고양이 울음소리를 넣었다. (중략) 고양이 울음소리는 천국에 잘 도착했다는 대답의 의미다. 실제로 고양이는 영적인 동물이라고도 하지 않나. 나는 마사코와 쥰의 공간을 ‘고양이의 집’이라고 생각했다. 고양이는 예민한 동물이고, 사람과 공간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쥰은 고양이 같은 사람이다.

p.186

 

 

 

이은선   새봄은 이야기의 진행을 가능하게 만드는 캐릭터이고, 동시에 윤희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성실한 관찰자다. 새봄의 캐릭터에는 또 어떤 면들을 기대했나.

임대형   (중략) 영화에서는 생략됐지만 각본에는 윤희의 딸이 다녀갔다는 마사코에 말이 쥰이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있다. ‘지 엄마 어렸을 때 닮았으면 예쁘겠지.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겠지.’

p.192

 

영화에선 생략된 장면이었기 때문에 새봄의 성격이 윤희를 닮았다는 걸 몰랐다. 윤희는 쥰과 헤어진 이후에 성격이 많이 변했을 테니, 지금의 윤희와 새봄이 별로 닮지 않아 보일 만도 하다. 사실 이 대사는 왜 뺐는지 잘 모르겠다ㅠㅠ 넣었으면 좋았을텐데….

 

 

 

임대형   여성 배우들의 주름은 악플의 대상이 되고, 남성 배우들의 주름만 훈장처럼 이야기되는 것은 씁쓸하다.

p.196

 

 

 

이은선   본편에서 삭제된 몇 가지 설정들에 대한 것도 묻고 싶다. 각본에는 윤희가 새봄에게 만들어주는 알밥 관련 에피소드가 몇 번 등장하던데.

임대형   후반부에 윤희가 한식당에 취직하려고 하지 않나. 윤희가 나름대로 잘하는 요리가 하나쯤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편집 단계에서 현재의 러닝타임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들어냈다. 오타루에 다녀온 뒤 윤희가 새봄과 경수에게 알밥을 만들어주는 장면이 있는데, 그 이미지가 전형적인 어머니상처럼 보일 수도 있겠더라. 알밥은 색감 때문에 선택한 음식이기도 하다. 코닥 필름을 선호했던 윤희에게 코닥의 대표 색상인 노란색과 붉은색이 두드러지는 음식을 연결한 것이다. 사진의 색감을 구분해서 필름을 고를 만큼 윤희가 사진에 조예가 깊었다는 것을 말하는 설정이기도 했다. 사소한 디테일이지만 윤희 오빠가 운영하는 사진관에는 전부 후지 필름만 있다.

p.198

 

사진을 즐기고 자주 찍던 건 윤희인데 막상 사진관을 운영하는 건 윤희의 오빠인 것도 참 아이러니하고 씁쓸하다고 생각했다. 윤희의 오빠만 대학에 가고 윤희는 대학에 못 가는 대신에 카메라를 몰래 선물로 받았는데, 그마저도 오빠에게 뺏기고 만 거나 다름 없으니까.

 

게다가 코닥 필름을 선호하는 윤희와 후지 필름만을 쓰는 윤희의 오빠의 대조. 필름에 대해 잘 몰라서 놓쳤는데 인터뷰를 보니 이런 부분을 짚을 수 있었다.

 

 

 


 

 

 

인터뷰/배우 나카무라 유코

 

이은선   촬영 전 김희애 배우의 고교 시절 사진을 휴대폰에 저장해두고 매일 바라봤다고 들었다. 이 준비는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었나.

나카무라 유코   지금까지의 인생 중 가장 눈부시고 생을 실감할 수 있었던, 용솟음치는 듯한 시간을 함께한, 가장 사랑하는 사람. 윤힁의 존재 그 자체는 당시 쥰의 전부였다. 어떻게든 당시의 윤희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제작진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그걸 보면서 그때 윤희가 어떻게 웃고 움직이고, 무엇을 말하고 무엇에 눈물 흘렸는지, 머리카락의 향기와 손의 온기 등 두서없이 그를 상상했다. 동시에 그와 떨어져 생긴 공백의 시간 역시 느꼈다.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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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시나리오에는 쥰이 윤희와 재회한 뒤, 마사코와 했던 것처럼 포옹하는 신이 있더라. 영화 본편에는 실리지 않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어느 족이 더 마음에 드나.

나카무라 유코   상상을 더욱 부풀리기 때문에, (해당 장면이) 빠진 쪽을 좋아한다.

p.213

 

기억대로라면 영화에는 두 사람이 말 없이 걷는 장면만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내 생각에도 이렇게나 오랜만에 만났으면 그 어떤 말도 입 밖으로 제대로 나오지 않았을 것 같다. 시나리오에는 두 사람이 그래도 몇 마디를 주고받고는 포옹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을 뺀 건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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