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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혁 / 여름 정원

누가 내 꿈을 훼손했는지

 

하얀 붕대를 풀며 날아가는 새 떼, 물을 마실 때마다 새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림자의 명치를 밟고 함께 주저앉는 일 함께 멸망하고픈 것들

 

그녀가 나무를 심으러 나갔다 나무가 되어 있다

 

가지 굵은 바람이 후드득 머리카락에 숨어 있던 아이들을 흔든다 푸르게 떨어지는 아이들

 

정적이 무성한 여름 정원, 머무른다고 착각할 법한 지름, 계절들이 간략해진다

 

나는 이어폰을 끼고 정원에 있다 슬프고 기쁜 걸 청각이 결정하는 일이라니 차라리 눈을 감고도 슬플 수 있는 이유다

 

정원에 고이 잠든 꿈을 누가 훼손했는지 알 수 없다 눈이 마주친 가을이 담을 넘지도, 돌아가지도 못하고 걸쳐있다

 

구름이 굵어지는 소리 당신이 땅을 훑고 가는 소리

우리는 간헐적으로 살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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